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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유산
공성전 보고서 - 3일차
상태: 끔찍함. 오늘의 영향: 17 (하단은 급하게 작성되었다) 다 끝났다. 종잇장처럼 갈가리 찢기고 말았다. 놈들의 투석기는... 극악무도 그 자체다. 시들해진 불, 밝고 창창한 하늘과 흐릿한 안개. 썩은 악취가 코를 자극한다. 수는 모르겠다. 너무 많다. 지도자는 보르고스. 놈이 오고 있다. 육중한 장화. 으깨진 케이든의 두개골. 몸뚱이는 사라졌고 진흙뿐. 온통 붉은 색이다. 시장 광장을 향해 흐르는 강철의 파도. 내 형제들이 저 아래서 고함치고 있다. 내려갈 방도가 없다. 사방에서 커다란 비명이 들려온다.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아아, 신이시여. 제발... 나는 어쩌다 넓은 땅을 가졌을 뿐. 제발 내 머리를 으깨지 말아 주기를. 케이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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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을 점령한 침략자들
보병들은 항구로 진군하고 있을 것이다. 성문을 노릴 작정임이 틀림없다. 늦지 않게 비밀 다락방에 도착해서 다행이로군. 여기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놈들의 소리는 들린다. 저들의 군주인 북부 수호자가 구호를 외친다. 음침하고 비열한 느낌이다. 잠깐, 하늘이 움직이고 있나? 아니야, 움직이는 건 구름이다! 자욱한 안개에 찬란한 푸른 빛이 감돌고 있다. 이게 대체... 밖을 몰래 훔쳐보는 중인데, 더러운 살점처럼 찢어발겨진 조약돌이 눈에 들어온다. 놈이 장갑을 벗는다... 고대인, 맙소사... 손이 꽁꽁 얼어붙고 생기가 없는 게 꼭 무슨 썩어버린 냉동 고기 같다. 아무튼, 아래에서 뭔가를 들어 올리려는 걸까? 도통 모르겠다.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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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795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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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혀 버린 우리들
개자식들, 도심으로 이어지는 문을 닫아 버리다니. 가난한 우리를 썩어 죽게 내버려둘 셈인가! 하지만 보르고스의 군대가 네놈들을 싹 쓸어 버릴 테니 그래 봐야 헛수고지. 모조리 불태워 버렸으면 좋겠군. 고르만더에게 청동과 강철 맛을 보여 주라고! 내가 그리 간단히 뒈질 것 같아? 이렇게 숨어 있지만, 지난겨울에 얻은 빌어먹을 병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다고. 바깥에서 북부 종자들이 난리 치는 지금, 혹시라도 병에 굴복한다면, 재채기라도 한다면, 큰 소리로 지껄인다면... 이 하수도는 내 무덤이 될 테지. 몸이 떨린다. 하지만 오한 탓이 아니라... 뭔가 이상한데. 여기에 바람이 부나? 아니야, 이건 숨소리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호흡이... 누구의 숨소리인지, 어디인지도 모르겠지만... 내 안에 있어... 목안이 너무 차갑다... 산성이잖아. 이래서야 하수구 오물보다도 더 안 좋아. 도와줘... 겨울이 다시 찾아온 느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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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 흙으로 돌아가노라
고단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전쟁을... 아니, 생생한 침공의 현장을 목도하게 될 줄이야. 정말 많은 이들을 땅에 묻었어. 사람들을 마지막 여정으로 인도한다는 생각에 솔직히... 마음이 편하기는 했지. 작별 인사를 대체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내가 떠날 차례로구나. 북부 병단이 성문을 지났으니 성에 있다고 안심할 처지는 못 돼... 고르만더이(가) 문이란 문은 다 닫고 성문을 내렸지만, 괜한 헛수고일 뿐이지. 어차피 놈들은 방법을 찾아낼 테니까. 고대인이여, 우리를 지켜주소서. 어둠의 장막이(가) 내부로 스며들고 있나이다. 무엇인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나이다. 누가 이걸 찾아낼지, 혹은 누가 살아남을지 모르겠지만... 부탁이니 늙은 떡갈나무 아래에 묻힌 내 마누라와 자식들 옆에 좀 묻어 주시기를. 딱히 남길 말도 없으니 묘비에는 아무것도 안 적어도 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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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7687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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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향해
고르만더 놈이 어디로 줄행랑쳤는지, 혼자 도망쳤는지 창녀를 끼고 달아났는지 모르겠지만... 도시가 완전히 포위돼 버렸다. 이른 아침, 성벽을 무너뜨린 놈들이 짙고 숨 막히는 타조 깃털 덩어리처럼 우리 마을을 잠식해 버린 것이다. 이렇게 나 홀로... 겁에 질린 멍청이처럼 움츠리고 있는 게 대체 몇 년 만인지 모르겠군. 새장 속에서 몸부림치는 카나리아처럼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냥 다 포기하고 배에 올라탔어야 했는데. 배를 붙잡아야 했는데... 난 울타리도 치고 지도도 읽을 수 있다고! 아니야, 지금이라도 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넓은 바다의 푸르름에 눈을 뜨고 피부를 뒤덮은 소금기를 느낄 수 있을 테지. 인어들을 보고 항구에서 큰 소리로 노래할 수 있을 거야! 외로운 작은 탑이 아니라 폭풍 속에서... 불속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날 비웃지는 말아 줘.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진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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