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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정 은둔자
은둔자에게 줄 약 좀 챙겨놓으면 안 될까?
안녕 데이비스, 잘 지내고 있지? 급한 부탁이 있어서 말이야. 혹시 가끔씩 찾아오는, 계곡 뒤편의 산에 사는 그 은둔자 알아?생가죽으로 옷을 차려입고 자수정이랑 물자를 교환하는 그 이상한 노인네 말이야? 그 노인이 또 찾아왔는데 약초나 향신료, 야채는 하나도 안 찾더라고. 대신 약이 꼭 필요하다고 했는데 마침 가진 게 하나도 없었지. 아무리 주름진 두 손으로 자수정이 가득한 자루를 가져왔다고 하지만 정말 내줄 약이 하나도 없었어. 약이 도착하는 대로 그 노인에게 줄 팅크제만 따로 빼놓으면 안 될까? 병사들이 우선 순위이긴 하지만 그 노인이 워낙 절박해 보이니 다음에 다시 찾아올 때를 대비해 미리 챙겨놓자고. 아니면 물론 그 다음이 찾아온다면 말이지만. 노구를 이끌고 여기까지 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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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에에게,
또 하루가 흘러가네. 눈은 바깥 세계를 온통 고요하게 해주지만, 내 심장은 뛸 때마다 무거워지기만 해. 오늘 밤은 매일 어젯밤보다 더 춥다고 자랑이라도 하려는 것 같아. 당신이 곁에서 날 따뜻하게 해줬다면 참 기쁠 텐데. 아멜리에, 오늘 당신의 의자가 망가졌어. 고쳐 보려고 했는데 삭신이 쑤셔서 그럴 수 없었지. 그럼에도 의자를 내던져버리지 못했어. 의자는 그냥 그 자리에, 아무 쓸모도 없이 지난날의 형체만 갖춘 채 추억을 떠올릴 때마다 날 아프게만 하고 있지. 정말 고약한 하루야. 당신이 곁에 있었다면 내 기분을 달래줬을 텐데. 당신이 좋아하던 보랏빛 꽃밭 옆의 정원에서 꽃잎처럼 머리칼을 휘날리는 당신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신은 주변을 둘러볼 테고, 두 눈의 눈빛이 천천히 둔감해지는 내 심장을 광채로 가득 채워줬을 텐데. 난 당신을 오직 라일락 소용돌이로만 추억하고 싶어. 삐걱거리는 망가진 의자의 잔해가 아닌 겨울에 피는 꽃을 바라보며 당신을 추억하고 싶어. 하지만 당신이 내내 곁에 있으니 힘드네.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말이야. 당신과 다시 도망갈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난 언제나 당신을 선택할 거야, 나의 자그마한 자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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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에 레이크
당신은 내가 쉬는 모든 숨결 속에, 내가 흘리는 모든 눈물 속에, 그리고 나의 모든 깨어있는 꿈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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